1. 개 요
안녕하세요. 커 피 한잔입니다.
요즘 새벽 날씨는 가을이라기보다는 차갑고, 낙엽도 조금씩 떨어지는데, 겨울이 성큼 다가온 듯합니다. 예전에 마음과 정신을 우렁차게 만들어 줬던 자동차 브랜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람보르기니(Lamborghini)는 고성능 슈퍼카와 스포츠카를 만드는 이탈리아 자동차 제조 회사입니다.
'어떤 한 회사보다 이길 수 있는 빠른 차'를 제작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자동차 제작 공장을 설립하였습니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투우를 굉장히 좋아했고, 가야르도, 무르시엘라고, 우라칸, 아벤타도르 등 투우소의 이름을 붙였으며, 폭발적인 '레벤톤', 이기적인 '에고이스타', 악마적인 '디아블로'처럼 남성적인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폭스바겐 산하 고급 브랜드 아우디의 자회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주 볼로냐에 본사가 있습니다.
2. 람보르기니의 탄생과 설립자
농기계에 관심이 많았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기 정비사로 일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자동차 정비소 차렸던 람보르기니는 어렵게 구입한 피아트를 평상시 사용하다가 1948년 자동차 레이스를 위해 개조를 하고, 출전하였다가 도중 사고로 인해 탈락으로 인해, 이후부턴 레이스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습니다.
1947년 고향에서 트랙터 제조업체를 세웠고, 회사 이름을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트랙토리체'로 정했습니다.
람보르기니의 엠블럼 황소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별자리인 황소자리에서 따왔습니다.
람보르기니에서 만든 트랙터는 "절대 고장 나지 않는다"라고 할 정도로 견고하고 아주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막대한 부를 쌓게 되며 비로써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농업기계 제조업체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으로 성공한 자동차 마니아답게 알파 로메오, 란치아, 마세라티, 메르세데스 벤츠, 그리고 특히 페라리는 몇 대 구입했지만 문제점이 많아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람보르기니는 페라리를 능가하는 슈퍼카 제조 회사를 만들게 됩니다.
자동차 수집가였던 람보르기니는 페라리 250 GTO를 구매했습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엔지니어로써 판단했을 땐 클러치 결함으로 기어 조작이 힘들었고, 잦은 고장으로 인해 페라리를 찾아갔습니다.
'그래! 내가 페라리 오너인데 호의는 베풀겠지'라는 생각으로 페라리 차종의 클러치의 문제점을 알려 주려고 했지만, 하필 그당시 페라리는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연이은 승리를 했던 시기였으며, 또한 평소에도 자기가 만든 페라리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강한 엔초 페라리는 건방진 말투로 "당신은 자동차를 볼 줄 모르는 군, 가서 트랙터나 더 많이 만드시오"라고 큰 모욕을 줬습니다.
이에 성난 소처럼 같이 화가 난 람보르기니는 1963년 볼로냐 부근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한 후 마세라티, 알파 로메오 등 당시 이탈리아에선 인지도 높은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들을 영입해서 페라리에 대한 복수를 다짐합니다.
그리고 람보르기니의 제1의 사칙 내세워 '무조건 페라리보다 빠른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3. 경쟁과 발전
맨 처음 1963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람보르기니 350 GTV 모델을 선보였고, 이후 디자인 대부분을 계승하여, 보닛 라인을
낮게 디자인하고 헤드라이트를 고정식으로 깔끔하게 변경한, 람보르기니 350GT는 1964년 제네바 모터쇼에 출시했으며, 성능은 V12, 3.5리터, 280마력, 최고 시속은 250km를 자랑했습니다.
350 GTV에 대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350 GTV의 엔진 디자이너였던 지오또 비자리니와 충돌로 인해 엔진을 제때 제작하지 못하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모터쇼에 전시할 차량 엔진 부분에 벽돌을 채워 차량의 무게를 조절했고, 모터쇼 내내 아무도 후드를 열지 못하도록 잠금장치를 설치하였으며. 다행히 모터쇼가 끝날 때까지 들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음~
이에 페라리도 많이 당황했으며(페라리 250 GTO: V12, 300마력, 최고 시속 280km), 비로써 람보르기니는 페라리의 추격자이자 라이벌로써 인정받게 됩니다.
여기서 특이점은 엔초 페라리와는 대조적으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모터스포츠에 관련된 것은 많은 자금이 필요하기에 제작 공장에선 레이싱은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찍이 결정했습니다.
많은 스포츠카 제조업체들은 대회에 참가해서 속도와 신뢰성과 기술적 우수함을 입증하려고 노력했었고, 특히 라이벌인 엔초 페라리는 모터스포츠 대회 참가를 위한 자금 조달을 위해 공도용 자동차도 제작하였습니다.
이후 레이싱에 진심인 기술자들은 레이싱의 잠재력을 가진 (트랙에서 이길 수 있고, 공도에서도 운행이 가능한 모델) P400을 몰래 설계하였는데, 우연히 설계도를 보게 된 람보르기니는 레이싱엔 반대했지만, 회사 마케팅 기회이자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를 꿈꾸게 됩니다.
이렇게 모두의 염원을 담아 196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람보르기니 미우라를 출시하였고, 성능은 V12, 3.9리터, 최고 시속 288km를 자랑하며, 람보르기니의 염원인 세계 최고속도의 스포츠카에 등극하게 됩니다.
이 기록은 1974년 출시 한 람보르기니 카운타크(쿤타치) 최고 시속 295km에 의해 깨졌는데 또다시 세계 최고속도의 스포츠카로써 세상에 인정을 받습니다.
4. 성장과 특징
람보르기니 카운타크는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 콘셉트카로 출시하였고, 이후 1974년부터 본격적으로 양산 모델로 출시
되었지만, 출시 이전부터 생산에 과도한 투자로 인한 재정난으로 결국 자신의 친구에게 경영권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경영주가 바뀌어도 경영 상태는 불안정하지만, 람보르기니 카운타크의 후속 모델 연구는 계속했습니다.
1978년 파산 신청을 해서 이탈리아 법원이 운영권을 갖기도 하고, 스위스의 음식업체 대표의 밈란 형제는 3백만 달러에 회사를 인수하여, 회사를 연구, 발전시켜, 1987년 크라이슬러에 2천5백만 달러에 경영권을 넘겼고. 이후 폭스바겐 그룹의 아우디 AG에 매각되면서 예전의 람보르기니로 돌아가 자동차 개발에만 몰두하여, 찬란했던 명성을 찾기 시작합니다. 2001년부터 연 200대 판매를 시작하여 2003년 람보르기니 가야르도의 모델의 인기에 힘입어 연 1.300대로 증가하였는데, 세계 금융위기 상황으로 잠시 주춤하였습니다.
2017년 세 번째 모델이자 첫 SUV인 람보르기니 우르스는 출시하자마자 엄청난 인기와 상품성으로써 인정을 받아 럭셔리 부문에서 새로운 틈새시장을 차지하였고, 가야르도의 뒤를 이은 V10 람보르기니 우라칸이 등장하였으며,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에보(EVO)는 한층 럭셔리 슈퍼 스포츠카의 새로운 벤치 마크로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한 람보르기니의 특정 모델 들은 한정판 마케팅과, 세계 최초로 스포츠카 하이브리드 기술, 신소재 기술 등 람보르기니 만의 성능을 구현하였습니다.
참고로 같은 엠블럼을 사용하지만 제조 분야가 다른 람보르기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트랙터를 만들고 있는 제조업체이며, 아우디 소속이 아니라 독일의 트랙터 제조업체 소속입니다.
예전 람보르기니의 특징을 닮아서 성능과 디자인은 아주 우수하며, 유럽 내에서 인기가 좋습니다.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주지아로가 디자인 한 200마력 이상을 자랑하는 플래그십 트랙터는 대 당 3억 이상 한다고 합니다. 슈퍼카 가격과 동등한 성능을 지녔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람보르기니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로써 스포츠카이자 럭셔리 슈퍼카 (포르쉐, 페라리, 람보르기니) 삼대장 모두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은 유럽의 여러 자동차 브랜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상 커피 한 잔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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